암과 자폐, 파킨슨병, 거식증, 우울증 등 거의 모든 질병과 연관된 장기는 무엇일까? 정답은 ‘장’이다. 많은 이가 장을 단순한 소화기관, 대변을 배설하는 기관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의학계는 장을 ‘생의학 혁명의 중심지’로 여기며 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질병과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력적인 장 여행』의 저자이자 의사인 줄리아 엔더스를 비롯한 여러 의학 전문가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건강을 해킹하다: 장의 비밀>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신체 안과 위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로, 박테리아 역시 그중 하나다. 대부분 박테리아는 인체에 유해하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99%는 인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고, 일부는 도움을 주기도 하며, 또 일부는 인체에서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을 소화하고, 면역 체계가 자가 면역 질환을 유발하지 않으며, 허기짐과 포만감을 느끼는 것은 모두 장내의 박테리아 덕분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 유산균 광풍이 불었던 만큼, 장 내 환경이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어쩌면 장 내의 미생물은 유전적 요소보다도 우리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하며 흥미를 끈다. 시리즈에는 이를 방증하는 유명한 실험 결과도 등장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 중 한 명은 비만이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았을 때 그들의 마이크로바이옴에서 큰 차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들의 대변을 채취해 각각 다른 실험 쥐에 이식한 결과, 동일한 음식을 섭취했음에도 비만인 쌍둥이의 대변을 이식받은 실험 쥐는 대조군보다 체중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유전적 요소보다 우리 삶과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한 줄기 빛과도 같다. 유전적 요소는 불변하지만, 미생물은 변한다.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음식, 가족과의 관계, 반려동물 소유 여부, 운동, 스트레스, 성장기의 경험, 역경의 여부 등 삶의 거의 모든 요소에 영향받는다. 즉,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가 자신의 건강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명확한 가능성이다.

줄리아 엔더스는 어떻게 하면 마이크로바이옴을 건강하게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숲’을 비유로 든다고 말한다. “건강한 식물 몇 개를 심고 전부 달라지길 바랄 순 없어요. 숲에는 건강한 균형이 필요해요. 식물과 생명체가 환경과 빛, 물, 흙의 영양분을 잘 받아들이고 함께 살 수도 있도록요. 장내 세균은 매일 채소와 과일을 통해 섬유질 소량만 있으면 돼요.”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유지하는 방법은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견 진부한 해답처럼 보이지만, 그 접근법은 세간의 논리와 조금 다르다. 영상은 ‘건강한 식습관’이 글루텐프리, 비건, 비타민과 같은 키워드에 의해 정의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건강한 식습관은 가능한 한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 그리고 매주 20~30가지의 채소와 과일을 원물 그대로 섭취하는 것이다. 그러니 감자칩과 소시지를 섭취하는 것도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 측면에서는 상관없다. 어느 날 미친 듯이 감자칩과 소시지가 먹고 싶다면, 먹으면 된다. ‘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숲을 조성하는 것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다이어트를 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짧은 기간 내 살을 빼는 데 성공해도, 조금만 방심하는 순간 살이 불어나는 것은 흔한 사례다. 그것은 우리 몸에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현대인에게 채소와 과일 섭취는 그 자체로 노동이다. 쉽고 저렴하게 배 불릴 수 있는 초가공식품이 산재한 작금의 환경에서 채소와 과일은 실로 비합리적인 선택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는 본디 비합리적이다. 굳이 안정적인 환경을 벗어날 까닭은 없다. 당신이 현재의 삶에 온전히 만족한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삶의 장애물이 있다면, 지금 당신에겐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새로운 신념과 이를 향한 결심과 의지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영상의 말미에는 마이크로바이옴 이식을 통한 각종 질병 및 증상의 치료 가능성이 제시된다. 그 매개는 대변이다. 상당히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치료법이지만, 그 효과는 예상외로 뚜렷하고 즉각적이다. 남동생과 남자 친구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한 후, 몇 주 내에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 경험했다는 출연자의 증언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2022년 FDA는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를 승인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변화시킬 인류의 삶은 이제 막 개막했다.

※ 사진 출처: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