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뜻밖의 큰 주목을 받은 도서로는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9월 출간 이후 교보문고, 알라딘, YES24 등 주요 도서 유통사에서 최상위권 판매고를 올린 저소비 생활은 11월인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을 만큼 꾸준히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10여 년 전,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이 대두되었을 때만 해도 이를 금세 사그라들 유행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저소비 생활의 열풍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미니멀리즘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방증한다.
현대사회의 라이프스타일로 미니멀리즘을 정착시킨 인물을 묻는다면 조슈아 필즈 밀번(Joshua Fields Millburn)과 라이언 니커디머스(Ryan Nicodemus)를 답할 수 있다. 둘은 2010년대 웹사이트 ‘미니멀리스트’와 저서 『미니멀리스트』로 대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에 미니멀리즘 열풍을 일으킨,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의 시조와 다름없다. 이들이 2021년 넷플릭스에 공개한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은 그들이 체득한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의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에는 그들이 물건에 매몰됐던 이유는 무엇이고, 그 문제를 자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는지 일련의 역사가 담겨있다. 영상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 편리한 온라인 쇼핑 시장의 발전 등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방점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미니멀리즘 연대기에 찍힌다.
그들은 가난, 부모의 이혼 등으로 결핍된 어린 시절이 물건에 집착하게 된 최초의 계기라고 말한다. 가난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주는 물건을 서슴없이 받았고, 더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 가정을 보며 자신도 그들처럼 물건이 많으면 행복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가난한 삶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했으나, 실제로 성인이 되어 목표를 이룬 뒤에도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에 집착하고, 일에 집착할수록 행복감을 보상받고 사회적 성공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물건들로 집을 채우게 되었다. 많은 이가 공감할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영상에서 한 전문가는 두 사람이 경험한 물건 집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으로서 무엇이 충분한지 결정하는 방법은 주변 사람들과 관련이 있어요. (중략)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가구, 옷, 차 등을 판단해요. 원래는 주위 사람들의 배경이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했기 때문에 ‘괜찮아, 비슷한 수준이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TV와 SNS의 맹공격 때문에 관계 집단의 수직적 확장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어요. 이젠 제니퍼 애니스톤의 헤어스타일을 제 것과 비교하고 급기야 카다시안 집과 비교하기까지 하죠. 지금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불평불만과 스트레스가 넘쳐나요.”
물건에 집착하는 배경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사회적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물건에 추억이 깃든다고 믿어서, 누군가는 영리한 광고의 덫에 걸려서 물건에 집착하지만, 현대인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다. 거리, 지하철, 회사, 집안 어디에서나 광고와 타인의 삶에 노출됨으로써 우리는 자신 혹은 자신의 삶이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겪게 되며, 이 불안감은 물건에 집착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에서는 조슈아와 라이언 외에도 여러 사람이 인터뷰에 응해 미니멀리즘으로 달라진 삶을 증언한다. 그들이 어떠한 사유로 물건에 집착하고, 문제를 자각하게 되었든, 결국 그들이 내린 자문은 다음 하나로 귀결된다. ‘진정으로 나의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친구나 가족과 같은 관계일 수도 있고, 예술적 성취일 수도 있으며, 여행하며 경험하는 견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물건은 그 답이 될 수 없다고, 수많은 미니럴리스트가 입을 모아 강조한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공간 정리나 소비 습관 개선을 계몽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이는 곧 더욱 의미 있고 주도적인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근본적인 목적의식 자체다. 물건은 경주마의 눈가리개처럼 물건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것에서 주의를 돌리게 한다. 여전히 미니멀리즘에 회의적이라면, 지금 당장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 하나를 찾아 버려보자. 그리고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자.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 물건은 당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될 것이며, 당신은 물건을 살 때는 경험하지 못한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경험이 만족스러웠다면 내일은 물건 두 개를, 그다음날에는 물건 세 개를 버리는 한 달간의 미니멀리즘 챌린지에 도전해 보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는 것이 쉬운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충만한 삶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조슈아와 라이언이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에서 미니멀리즘 성공담을 당당하게 공유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미니멀리즘이 왜 이로운지 직접적으로 설교하는 대신, 친구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에 부담 없이 그 가치관에 자연스레 설득된다. 1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이지만, 그 영감과 여운은 아주 오래 지속될 것이다.
※ 사진 출처: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