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트를 방문했고, 소고기와 닭고기, 달걀, 시금치, 로메인 상추, 땅콩버터를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구매한 식료품 중 대장균 또는 살모넬라균 감염의 위험이 있는 식재료는 무엇일까? 정답은 모든 식재료이다. 많은 이가 소고기와 닭고기, 달걀까지는 위험군으로 꼽더라도 로메인 상추와 땅콩버터까지는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잎채소와 견과류를 통해서도 병원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보고된 사례가 많지 않아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장균과 살모넬라균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식재료에 잠복해 있으며, 언제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킬러와도 같다.

넷플릭스 시리즈 ‘포이즌: 음식에 감춰진 더러운 진실(이하 포이즌)’은 미국 내 식음료 시장 역사의 대표적인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파동을 짚어나가며 우리의 식탁이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 폭로한다. 앞서 언급한 식료품은 모두 미국 내에서 상당한 희생자를 내며 병원균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례들이다. 미국 내의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등한시할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수입과 수출로 국민의 식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땅콩의 경우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자급률은 23.8%에 불과하며, 땅콩과 땅콩버터의 미국 수입 점유율은 1~2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든 병원균에 감염된 식재료가 우리의 식탁에 오를 위험이 존재한다.

포이즌의 전개 방식이 흥미로운 까닭은 우리의 굳건한 믿음 두 가지를 단박에 깨트리기 때문이다. 육류만 제대로 가열해 먹으면 병원균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 첫 번째 믿음이요, 친환경, 유기농과 같은 각종 인증을 받은 식품은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이 두 번째 믿음이다.

첫 번째 믿음과 관련하여, 사실만 적시하자면 잎채소와 견과류 자체는 대장균과 살모넬라균으로부터 무고하다. 문제는 재배 및 가공 환경에 있다. 포이즌은 농작물 재배 시설이 축사와 매우 인접해 있으며 축사에서 흘러나온 분뇨가 하천이나 관개 수로를 통해 유입되어 농작물을 오염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하천과 관개 수로가 병원균을 실어 나르는 길이 되는 셈이다. 병원균은 물 세척만으로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고, 고온에서 가열해야만 사멸한다. 그러나 농작물은 육류보다 생으로 섭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육류보다 더 위험한 병원균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재배 환경에서 오염되지 않더라도, 노후화된 시설에서 가공되면 병원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포이즌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병원균 관리에 얼마나 무심한지 증명하는 장면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들은 추가 비용을 들여 안전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검사 결과를 조작하여 식품의 안전을 세뇌한다. 소비자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있더라도 이윤 극대화에 매달리는 기업의 행태를 지켜봐 온 이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친환경과 유기농 같은 식품 관련 인증이 병원균과 관련해서는 전혀 믿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사뭇 비참하다. 친환경과 유기농 인증이 건강한 식재료를 방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친환경과 유기농 인증은 병원균 검출 여부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HACCP(해썹,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을 통해 식품 제조 과정 전반에 걸쳐 병원균의 오염 가능성을 파악하므로 미국의 경우보다 상황이 낫기는 하다. 다만 소비자가 각종 인증의 세부적인 차이를 인지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해썹 인증이 모든 식품에 의무인 것도 아니다. 해썹 인증은 축산물, 어린이 기호식품, 김치 등 특정 식품 제조·가공업체와 매출액이 연 100억 원 이상인 식품 제조·가공업체만 의무 부과 대상이다. 포이즌에서 미국의 정부 기관 주도 식품 관리 절차가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확인하고 나면, 우리나라의 관련 제도 역시 더욱 치밀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이즌은 정부와 기업 사이의 결탁 관계가 존재하는 한, 식재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영원히 깨질 수밖에 없다고 설파한다. 정부와 기업은 이해관계에 따라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다. 정부가 기업을 통제할 제도를 수립하려 하면 기업은 로비 작업에 돌입한다. 물가가 상승하고 일자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기업의 대의명분과 거액의 사례금을 정부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사태가 발발한 후에는 솜방망이 처벌이면 그만이다.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을 방치하여 5만 6천 명의 희생자를 낸 미국 ‘퀄리티 에그(Quality Egg)’ 사의 소유주 오스틴 잭 디코스터는 수십 년간 법망을 피해 다니다 3개월의 짧은 징역형으로 면죄받았다. 이러한 참극이 비단 미국만의 일일까?


상당수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에 감염되더라도 배만 좀 아픈 거라고, “화장실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면 된다, 별일 아니다”라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대장균에 감염되어 생사의 고비를 겨우 넘긴 캐롤라인은 경고한다. “그보다는 훨씬 심해요. 혼수상태에 빠지고 뇌 손상이 오며 신장에 후유증이 남죠.” 그는 샐러드를 한 접시 먹었을 뿐인데 매일 신장의 여과 능력을 높이는 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신장 이식을 하거나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병원균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병원균 감염률이 높은 식재료를 최대한 피하고, 가열을 통해 식재료를 완전히 익히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병원균의 위험으로부터 거의 벗어날 수는 있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이다. 병원균에 감염된 식재료가 버젓이 유통되는 한, 우리는 식재료 간의 2차 감염, 생활공간의 오염 등 다양한 경로로 병원균에 노출될 수 있다. 양의 탈을 쓴 정부와 기업의 탈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안전한 식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강력하고 끈질긴 연대가 필수다.

※ 사진 출처: 넷플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