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술자리가 부쩍 늘며 음주가 건강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음주는 단순히 개인의 기호 문제가 아닌, 직장 문화와 친목 도모의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 잡은 만큼 술자리를 무작정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넘어 '어떻게 마셔야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안한다.
‘절주’의 기준 명확히 하기
건강한 음주 습관의 첫걸음은 자신이 마시는 알코올의 양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기준은 '표준 잔(Standard Drink)'으로, 이는 순수 알코올 10~14g을 포함하는 음료의 양을 의미한다. 국가암정보센터의 ‘국민 암 예방 수칙 실전지침’에 따르면, 표준잔 1잔의 양은 소주 약 1/4병(77ml), 맥주 약 한 캔(340ml), 막걸리 약 1/4 병(255ml), 와인 약 1/6병(127ml), 위스키 약 1/10병(38ml) 정도에 해당한다.
국제적인 기준과 국내 전문가들의 권고를 종합할 때, 남성은 하루 4잔, 여성은 2잔 이하, 주당 남성 14잔, 여성 7잔 이하로 제한할 것을 권고한다. 남성 5잔 이상, 여성 4잔 이상의 경우 폭음으로 간주한다.
한 번에 마시는 술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빈도다. 알코올은 간에서 해독되는데, 이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표준 잔 1잔당 약 1시간이 소요되고, 소주 1병(72g) 분해에는 10시간 정도, 맥주 1캔은 약 2~3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진다. 단, 완전히 간이 회복되려면 최소 2~3일의 휴식이 필요하므로, 주 3회 이상 음주는 간이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아 손상을 누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음주를 주 2회 이내로 제한하고 적어도 2~3일의 금주 기간을 확보할 것을 권장한다.
‘음주 속도 조절’과 ‘알코올 흡수 늦추기’
알코올이 몸에 미치는 영향은 '총량'뿐만 아니라 '흡수 속도'에도 크게 좌우된다. 알코올이 체내에 빠르게 흡수되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간에 부담을 주고, 뇌세포 손상을 가속하며 취기가 빨리 오른다. 체내 알코올 흡수 속도를 낮추기 위한 세 가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음주 시 물을 함께 마신다. 알코올은 이뇨 작용을 촉진하여 체내 수분을 빼앗고 탈수를 유발한다. 알코올을 물과 번갈아 마시면 음주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탈수를 방지하여 숙취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술 한 잔당 물 한 잔을 마시는 습관이 권장된다.
둘째, 공복 음주를 피한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위장 점막을 자극하고 혈액으로 빠르게 흡수된다. 음주 전후에는 반드시 지방과 단백질이 포함된 음식을 섭취하여 알코올의 흡수 속도를 늦추고 위 점막을 보호해야 한다.
셋째,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자제한다.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면 총 알코올 섭취량을 파악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탄산이 포함된 음료를 섞을 경우 탄산이 위벽을 자극하여 알코올 흡수를 가속하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넷째, 숙취해소제는 음주 30분 전에 섭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숙취해소제는 음주 전후 언제 섭취하든 숙취 감소에 도움이 된다. 다만, 음주 전에 숙취해소제를 복용하면 알코올 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체내로 들어온 알코올을 빨리 분해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참고로 올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숙취 해소'를 표시·광고하는 46개사 89개 품목의 인체 적용시험 실증자료를 검토한 결과를 발표했다. 광동제약㈜의 '광동헛개파워', 동아제약㈜의 '모닝케어 프레스온'(G·H), 롯데칠성음료㈜의 '깨수깡', (주)삼양사의 '상쾌환', HK이노엔㈜의 '컨디션'(레이디·CEO·헛개), 한독의 '레디큐 드링크 오리지널' 등은 식약처의 검증을 통과했으나, 그래미의 '여명808', '여명1004 천사의행복'과 광동제약의 '광동 男남 진한 헛개차茶', 조아제약의 '조아엉겅퀴골드' 등은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으니 숙취해소제 선택 시 참고하도록 하자.
숙취 해소의 과학: ‘수분’과 ‘당분’ 보충
가장 좋은 해장법은 숙취를 유발하지 않도록 과음을 피하는 것이지만, 불가피하게 과음했다면 다음 날 숙취를 최소화하고 신체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숙취의 주범은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와 알코올의 이뇨 작용으로 인한 탈수 및 전해질 불균형이다. 해장의 핵심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구토나 이뇨 작용으로 손실된 수분과 미네랄(전해질)을 보충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생수 외에 이온 음료나 콩나물국, 북엇국과 같은 미네랄이 풍부한 국물을 섭취하면 탈수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국물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 메티오닌 등의 아미노산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나트륨이 과하게 함유된 짠 국물은 탈수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지양한다.
당분 섭취를 통해 간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법도 있다.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혈당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저혈당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간은 해독 작용 외에도 혈당 조절에도 관여하는데, 당분을 공급하면 간이 해독 작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보충해 준다. 꿀물이나 과일 주스 등의 단순당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당분은 오히려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적정량을 섭취해야 한다.
한편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해장 음식인 라면은 해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염분 함량이 높아 알코올로 손상된 위장을 더 자극할 수 있으며, 기름에 튀긴 유탕면의 경우 지방 함량이 높아 간이 지방 분해 작업까지 해야 해 숙취 해소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
혹자는 타이레놀을 비롯한 해열진통제를 복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경계해야 하는 음주 후 습관이다. 숙취로 인한 두통 해소를 위해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면, 알코올이 간에서 대사되는 과정에 간 독성이 증가하여 급성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부프로펜 계열의 소염진통제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해열진통제보다 간 독성은 낮지만, 위장 자극도가 높고 위장관 출혈 위험이 있어 반드시 식후에 섭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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