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반의 지속 가능성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방어적 전략인 탄소 감축에 집중했다면, 2025년의 지속 가능성은 자연의 손실을 멈추고 회복세로 돌려놓는 공격적 전환인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시대로 진입했다. 요컨대, 네이처 포지티브는 지구의 자연 자산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멈추고 플러스(+)가 되도록 회복시키자는 세계적인 목표다. 탄소 배출량 수치 뒤에 가려져 있던 생태계의 비명에 전 세계가 응답하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선 지구 생태계: 73%의 경고

세계자연기금(WWF)이 발표한 「2024 지구생명보고서(Living Planet Report 2024)」에 따르면, 지난 50년(1970~2020년) 동안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 규모는 평균 73% 급감했다. 특히 담수 생태계의 경우 감소 폭이 85%에 달해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보고서는 우리가 이미 자연이 회복 불가능한 임계점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다다랐다고 경고한다. 아마존 우림의 황폐화나 산호초의 대규모 멸종은 단순히 자연경관의 상실을 넘어, 인류가 의존하는 식량, 식수, 공기 정화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2025년 현재,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은 더 이상 별개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쌍둥이 위기(Twin Crisis)'로 인식되고 있다.

왜 ‘탄소 중립’만으로는 부족한가?

지난 10년간 전 세계는 '탄소(Carbon)'라는 단일 지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25년에 들어서며 전문가들은 탄소 감축만으로는 지구가 처한 복합적인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배경은 다음 세 가지와 같다.

첫째, ‘탄소 터널 시야(Carbon Tunnel Vision)’가 한계에 다다랐다. 탄소 터널 시야란 지속 가능성이나 기후 위기를 논할 때, 오직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는 단 하나의 지표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많은 기업이 탄소 중립을 위해 나무를 심었지만, 단일 수종만을 빽빽하게 심은 인공림은 탄소는 흡수할지언정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는 '녹색 사막'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오히려 자생종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토양의 영양분 균형을 깨뜨리며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제는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생태계 서비스를 복원해야 한다는 반성이 확산되었다.

둘째, 기후 변화의 가장 강력한 방어제는 ‘자연’이라는 믿음이 공고해졌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 해조류 숲(블루카본), 열대우림은 인공적인 탄소 포집 기술(CCUS)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탄소를 저장한다. 2024년 말 열린 제16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6)에서는 "자연 기반 솔루션(NbS) 없이는 파리 협정의 1.5도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재차 강조되었다. 자연 복원이 곧 가장 강력한 기후 대책이라는 인식이 공고해진 것이다.

셋째, 공급망의 실존적 리스크와 경제적 손실의 위기감이 확산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 2025(Global Risks Report 2025)」는 향후 10년 내 인류가 직면할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붕괴'를 2위로 꼽았다. 자연 자본에 의존하는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약 44조 달러 가치)이 생태계 파괴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탄소 배출권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멸종된 종이나 오염된 수자원은 돈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경영 현장을 덮쳤다.

전 세계적 네이처 포지티브 흐름에 한국도 동참

세계는 이제 네이처 포지티브를 법적, 재무적 의무로 바꾸는 추세다. 일례로 TNFD(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2025년 9월 발간된 「TNFD 2025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20개 이상의 금융기관 및 기업이 자연 관련 리스크 공시에 참여하고 있다. TNFD는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자연 훼손이 기업의 '재무 상태'에 미치는 위험(의존도)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특히 투자자들은 이제 "귀사의 공급망이 생물다양성 핫스팟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산림파괴방지법(EUDR)을 통해 고무, 카카오, 팜유, 대두 등 산림 파괴와 연관된 제품의 수입을 엄격히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 법안은 제품이 생산된 지리적 위치 데이터(GPS 좌표)까지 요구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EU 내 매출액의 최대 4%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또한,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에 생물다양성 공시 항목을 필수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

한국 역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환경부는 2024년 8월 확정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국토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목할 점은 '자연 공헌 구역(OECM)' 제도의 확대다. 이는 엄격한 국립공원 지정이 아니더라도, 기업이나 민간이 관리하는 숲, 대학 캠퍼스, 습지가 생태적으로 관리된다면 보호지역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 사업장 인근 수자원 복원 활동 및 폐수 정화 데이터를 TNFD 가이드라인에 맞춰 공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폐그물을 재활용하여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는 '블루카본' 사업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확대하며 해양 생물다양성 회복을 선언했다. 끝으로 ‘SK하이닉스’는 생산 공정에 필요한 수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지역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이를 '자연 자본 관리'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산업 키워드로 부각되는 ‘재생 농업’과 ‘생물다양성 크레딧’

네이처 포지티브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새로운 산업 구조의 변화를 이끈다. 재생 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이 대표적인 예다. 토양의 자생력을 높여 탄소를 흡수하고 수분을 보존하는 농법에 ‘네슬레’ ‘다논’ 등 글로벌 식품 기업들이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화학 비료 사용을 줄여 토양 속 미생물 생태계를 살리는 토양 복원 전략이다. 또한 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유사하게,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복원한 성과를 자산화하여 거래하는 ‘생물다양성 크레딧(Biodiversity Credits)’ 시장이 2025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세계경제포럼(WEF)과 국제생물다양성크레딧연합(IABC)은 이 시장이 기업의 '네이처 네거티브'를 상쇄하는 핵심 도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처 포지티브는 인류의 '생존 전략'이자 새로운 '경제적 기회'다. 자연이 제공하는 수정, 수질 정화, 기후 조절 등의 가치를 경제 시스템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WEF의 분석에 따르면, 자연 친화적인 경제 모델로의 전환은 2030년까지 연간 10조 1,000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와 3억 9,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 중립이 인류의 '과거 실수'를 수습하는 과정이었다면, 네이처 포지티브는 지구가 가진 본연의 회복력을 복원하여 인류와 자연이 공존하는 새로운 부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다.

앞으로의 5년은 지구 생태계의 운명을 결정지을 골든타임이다. 기업은 규제 대응을 넘어 자연을 새로운 자산으로 인식해야 하며,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네이처 컨셔스(Nature Conscious)' 라이프스타일을 내재화해야 한다. 우리가 자연에 내어준 자리가 곧 인류가 안전하게 머물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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