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해진 산호초의 모습, 이른바 ‘산호 사막화’를 고발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한 번쯤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 해양 산성화 등이 산호 사막화의 주요인으로 거론되지만, 어쩌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 범인은 바로 ‘선크림’이다.
꼭 피해야 할 성분,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자외선 차단 성분은 대부분 유기자차 선크림(백탁이 없는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에 사용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은 해양 생물 유해 성분으로 ▲옥시벤존(벤조페논-3) ▲옥티노세이트 ▲옥토크릴렌 ▲벤조페논-1 ▲벤조페논-8 ▲옥틸디메틸 파바(OD-PABA) ▲4-메칠벤질리덴캠퍼 ▲3-벤질리덴캠퍼 ▲나노 티타늄디옥사이드 ▲나노 징크옥사이드를 지목한 바 있다. 이 중 나노 티타늄디옥사이드와 나노 징크옥사이드가 물리적 자외선 차단 성분이며, 나머지는 모두 화학적 자외선 차단 성분이다. 무기자차 선크림은 환경에 무해하다는 주장은 속설이 한때 널리 퍼지기도 했으나,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보도와 같이 나노 형태의 물리적 자외선 차단 성분은 환경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특히 해양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되는 성분은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 두 가지다. 옥시벤존은 자외선 차단 효과가 뛰어난 화학적 자외선 차단 성분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갈 경우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을 유발하고 산호초 및 해조류의 세포에 악영향을 미쳐 사멸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는 산호의 DNA를 손상하고, 산호 유생의 기형을 유발하며, 산호의 번식과 성장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관광객의 왕래가 잦은 미국 플로리다 키스제도, 하와이에서는 정자와 난자를 생산하지 못해 번식이 불가능한 산호들이 속속 발견되는 추세다. 또한 이러한 유해 성분은 해양 생물의 내분비계를 교란하여 생식 능력 저하, 발달 이상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다이빙의 천국’으로 알려진 남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는 2020년 1월 1일 전 세계 최초로 옥시벤존과 옥티녹세이트를 포함한 선크림의 판매 및 사용을 금지했으며, 하와이주는 1년 뒤인 2021년 1월 1일 팔라우와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효했다. 하와이의 경우 의사의 처방이 있을 경우에만 유해 성분이 함유된 선크림 사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환경에 이로운 '리프 세이프' 선크림
소비자의 입장에서 모든 유해 성분을 숙지하고 제품 구매 시마다 성분표를 검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환경에 이로운 선크림을 간편하게 찾고자 한다면, 제품에 ‘리프 세이프(Reef-Safe)’ 혹은 ‘리프 프렌들리(Reef Friendly)’가 표기되었는지 확인하면 된다. 유해 성분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표기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더페이스샵 내추럴선 에코 슈퍼 액티브 리프세이프선 ▲마다가스카르 센텔라 히알루-시카 워터핏 선 세럼 ▲라운드랩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 ▲브링그린 티트리시카프레시선크림 ▲달바 핑크 톤업 선크림 ▲클레어스 올 데이 에어리 무기자차 선크림 등이 있다. 이 중 ▲마다가스카르 센텔라 히알루-시카 워터핏 선 세럼 ▲라운드랩 자작나무 수분 선크림은 유기자차, ▲브링그린 티트리시카프레시선크림 ▲클레어스 올 데이 에어리 무기자차 선크림은 무기자차, ▲더페이스샵 내추럴선 에코 슈퍼 액티브 리프세이프선 ▲달바 핑크 톤업 선크림은 혼합자차 제품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매년 바다로 유입되는 자외선 차단제가 14,000t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해레티쿠스환경연구소를 주도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옥시벤존은 62ppt의 농도만으로도 산호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이는 곧 16,250t의 물에 단 한 방울의 옥시벤존만 들어있어도 산호가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바다의 열대우림’으로 불리는 산호초는 세계 해양의 표면 중 0.1%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해양 생물 25% 이상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생태의 보고다. 생태계는 한 층만 빈틈이 생겨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젠가와 같다. 무분별한 선크림 사용은 우리의 일상을 서서히 좀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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