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없는 편리함은 없다. 커피캡슐의 등장과 함께 현대인은 더욱 간편한 커피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극심한 플라스틱을 배출한다는 죄책감을 감내해야만 했다. 커피캡슐 제조사는 자체적으로 캡슐 회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으며, 지난해엔 정부가 회수 사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에 귀 기울여 보면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11월 18일부터 ‘동서식품’과 손잡고 우체국망을 통한 커피캡슐 회수사업을 시작했다. 동서식품의 ‘카누’ 커피캡슐 소비자가 사용한 캡슐에서 커피박을 분리한 뒤, 알루미늄 캡슐을 우편전용 회수봉투에 담아 우체통에 넣으면 회수 후 재활용하는 사업이었다. 사업 발표 당시 일각에서는 우체통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 업계 후발주자인 동서식품 제품에 한정된 회수 등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환경부의 집계에 따르면 사업이 시작된 이후 올해 2월까지 커피캡슐 회수사업 실적은 410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규제 없이 소비자의 재량에 따라서만 회수가 진행되다 보니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한 매체를 통해 “캡슐커피로 인한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인데 정부는 캠페인 수준 행사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정부 규제를 기반으로 한 재활용 체계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독일 함부르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정부 주도로 공공기관에서 플라스틱 커피캡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올해 4월 22일,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네스프레소’와의 협약을 알리며 5월 9일부터 네스프레소 커피캡슐 회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커피캡슐 제조사인 동서식품과 네스프레소 공식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구매 시 우편회수봉투를 신청할 수 있으며, 전국 총괄우체국에서도 수령할 수 있다. 더불어 우정사업본부는 전국 3,300여 개 우체국 창구를 통한 새로운 배출 요령을 마련하는 등 기존의 불편했던 회수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 참여하며 회수 성과는 얼마간 나아질 전망이나, 여전히 전방위적 참여를 끌어낼 규제는 마련되지 않아 유의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기업 자체 성과는 어떠할까? 네스프레소는 2011년부터 커피캡슐 수거 및 재활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68여 개 수거 포인트에서 직접 반납하거나 웹사이트, 앱 등을 통해 반납을 신청할 수 있다. 네스프레소 한국지사는 지난해 2,248t의 캡슐을 재활용했으며 이를 통해 1,810t의 탄소 절감효과를 이뤄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간 총 캡슐 생산량은 공개되지 않아 성과를 평가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약 4,000억 원.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막대한 양의 커피캡슐이 매일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에는 검증이 필요치 않다. 매립된 커피캡슐은 분해되는 데 최소 150년이 걸린다. 커피캡슐은 한 사람의 생애주기보다도 긴 시간 남아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활약하는 셈이다.
2021년 한국소비자원이 캡슐커피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캡슐용기를 재질에 맞게 분리 배출한다는 응답은 42.0%에 그쳤다. 간편함에 길든 개인은 관성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 적극적인 커피캡슐 재활용을 위한 정부의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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