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가정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이 든 아버지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틀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 ASMR(뇌에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소리) 콘텐츠를 소비하는 MZ세대에게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텔레비전과 ASMR과 같은 백색소음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은 세대를 불문하고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백색소음과 핑크소음, 갈색소음의 차이

백색소음은 라디오가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소리, 음식을 써는 소리와 같이 ‘다양한 주파수가 일정한 크기와 형태로 나타나는 소음’을 칭한다.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알려져 공부나 독서와 같이 집중이 필요한 상황에 주로 활용되며, 특히 수면을 방해할 수 있는 소리를 차단하여 잠들기 전 침대에서 사용하는 이가 많다.

사실 우리가 향유하는 백색소음 콘텐츠 중 상당수는 핑크소음(핑크 노이즈) 혹은 갈색 소음(브라운 노이즈)인 경우가 많다. 핑크소음은 모든 주파수에서 음의 크기가 동일한 백색소음과 달리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음의 크기가 줄어드는 소음을 뜻하며, 빗소리, 나뭇잎 소리, 바람소리와 같이 자연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주로 속한다. 백색소음에 비해 부드럽게 들린다는 특징이 있다. 갈색소음은 높은 주파수의 소음이 제거된 낮은 주파수의 소음을 가리킨다. 핑크소음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주로 속하지만, 강한 빗소리, 거센 바람 소리, 폭포 소리와 같이 저음역이 강조된 소리에 국한된다. 유튜브나 수면 프로그램의 ASMR 콘텐츠는 백색소음뿐만 아니라 핑크소음, 갈색소음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도움 되지만, 습관 들이는 건 지양해야…

많은 전문가가 적당한 소음은 수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진화학적 관점에서 숲이나 들판과 같은 야생에서 야영 생활을 한 인류의 조상은 모닥불이 타는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다른 사람이 코 고는 소리 등 다양한 소음에 노출되어 생활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오랜 시간 체득한 수면 환경이 세대를 거쳐 유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침대가 발명되고 수면의학이 주목받으며 ‘수면은 조용한 것’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것은 산업화 이후로 근래의 일이다.

그러나 소음과 숙면의 연관관계를 다룬 연구 사례는 많지 않다. 202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이 백색 소음과 수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 38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구는 학술적 근거가 부족했다. 연구한 논문 중에는 백색 소음이 수면을 돕기보단 방해하는 쪽에 가깝다는 내용의 논문도 한 편 포함돼 있었다.

소음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측의 의견도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로닐 말카니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핑크 소음은 서파 수면 단계에서 나타나는 주파수 유형과 비슷하며, 노인의 경우 핑크 소음이 깊은 수면의 한 형태인 서파 수면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핑크 소음을 들으면서 잘 때 소리 없이 잤을 때보다 기억력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갈색 소음은 인지력, 집중력 향상에는 좋지만, 숙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세간에 갈색 소음이 도움이 된다는 설이 널리 퍼져있는 것과는 다른 연구 결과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전문가는 사람마다 적합한 수면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각자 필요한 수면 시간, 적합한 수면 시간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 이론을 정립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대다수가 동의하는 주장은 수면 시 백색소음과 핑크소음, 갈색소음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의존성이 강해져 장기적으로 불면증을 강화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잠들기 전 핑크소음이나 갈색소음의 도움을 받더라도, 잠이 든 후에는 조용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중론이다. 깊은 수면까지 도달하기에는 90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때 소음이 있을 경우 오히려 잠에서 깰 수 있다. 꼭 필요한 상황에만 ASMR을 활용하고, 타이머를 세팅해 깊은 잠에 든 이후에는 조용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권장한다.

수면은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고 세포를 재생하는 시간이다. 전문가들은 하루 최소 7시간 이상 숙면해야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숙면을 위해서는 낮에 햇빛을 충분히 쐬고 취침 1~2시간 전부터는 스마트폰 사용을 지양하며, 잠들기 최소 6시간 전부터는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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