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쏘아 올린 전기차 산업 존폐 위기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파리 기후 협정에서 탈퇴한 것은 미국의 환경 정책 전환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칭하는 화석연료는 지구 비등화(沸騰化)의 주범으로 꼽힌다. 화석연료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글로벌카본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에 따르면 2024년 화석연료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374억t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가별 배출 비중은 중국 32%, 미국 13%, 인도 8%, 유럽연합 6% 순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 촉각이 쏠리는 분야는 바로 전기차다. 그간 일반 자동차 대비 친환경적이라 평가받은 전기차는 조 바이든 정부 시절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산업을 육성해 왔다. 조 바이든은 신차의 56%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목표 산업 육성에 공들였으며, 전기차 의무화 정책과 ‘그린 뉴딜(친환경 산업정책)’은 그의 대표적인 정치 성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트럼프가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 철폐를 선언하고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 채굴 확대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면서 바이든의 공든 탑은 수포가 됐다.
전기차의 환경적 이점
트럼프가 촉발한 전기차 산업의 존폐 논란을 두고 전기차의 환경적 이점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이가 다시금 늘고 있다.
가스나 디젤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일반 자동차와 달리 전기차는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일각에선 전기 역시 화석연료를 이용하여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기차를 사용해도 환경 오염을 저속화하는 데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 4월 유럽 교통 전문 NGO인 교통과환경(T&E)은 유럽연합(EU) 내 전기차는 어떤 전력을 사용하든 내연기관차, 즉 일반 자동차보다 약 3배 적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고 발표했다. 전기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0g이지만 디젤차는 이보다 2.6배, 휘발유차는 2.8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면 전기차의 환경적 이점은 더욱 커진다.
전기차의 아킬레스건, 배터리
전기차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배터리다. 전기차 업계에서는 노트북,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리튬 이온(Li-ion) 배터리를 주로 사용한다. 전기차의 배터리는 500회 정도 충전하면 성능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를 300~400km로 가정할 때, 15만~20만km 주행 후에는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폐배터리는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버밍엄 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의 전략 요소 및 중요 소재 센터의 공동 이사인 폴 앤더슨(Paul Anderson) 박사는 “전 세계 리튬 이온 배터리의 재활용 비율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추정하는 가치는 약 5%다”라며 비관적인 상황을 전한 바 있다. 나머지 95%의 배터리는 주로 매립되며, 이 과정에서 산화코발트, 리튬, 망간, 니켈이 자연에 노출되어 수질 및 토양오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참고로 업계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간 200만 t에 달하는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한다.
다만 배터리 재활용 기술 및 산업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 희망이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 화학기업 ‘뒤젠펠트’는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흑연, 망간, 니켈, 코발트, 리튬 등 원료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물질들은 모터용 배터리 재생산에 쓰이며, 이 기술을 활용하면 배터리 구성요소의 96%를 재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들어 전기차 비관론자들이 발목을 잡는 것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다. 미국 테슬라, 중국 BYD(비야디) 등 대표적인 전기차 업체에서 LFP 배터리 사용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내외로, 저렴한 LFP 배터리는 제조사 입장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다. LFP 배터리는 원가가 저렴한 만큼 재활용 부가가치 역시 낮다. 재활용에 쓰이는 비용 대비 재활용으로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이 낮은 편이라 재활용이 더딘 실정이다.
다만 LFP 배터리 재활용 사업의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비약이다. 전기차 시장 큰손이자 전 세계 배터리 시장 1위인 중국에서는 LFP 배터리 활성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은 2023년 자국 내 배터리 재활용 기지 구축에 238억 위안(4조 4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역시 공정 효율화 및 광물 추출 기술 개발을 통한 LFP 배터리 재활용 사업 효율화에 투자하고 있다. 즉, LFP배터리 역시 충분한 사업성을 갖추고 있다.
배터리의 재활용 자체보다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배터리 생산에 동반되는 환경오염, 노동착취다. 전기차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와 니켈, 리튬 등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채굴하는 과정에서 산림 훼손과 식수 오염, 아동 노동 착취가 발생한다고 여러 매체가 보고하고 있다.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사들은 제품 제조에서 재활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 산업은 환경적 측면에서 분명한 잠재성을 갖추고 있다. 트럼프의 반(反) 전기차 정책이 아쉬운 까닭이다. 다만 당국 민주당과 업계의 반발이 심해 정책은 다소간 조율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 주요국으로 그들의 관련 행보가 보이는 영향력은 막대하지만, 덩달아 다른 국가들도 노력의 불씨를 꺼트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 사진 출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Freepi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