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택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비건택스(Vegan Tax)란 ‘채식주의’를 뜻하는 ‘vegan(비건)’과 세금을 뜻하는 ‘tax(택스)’의 합성어로 채식주의 상품에 책정된 과도한 값을 가리킨다. 동일한 규격, 유형의 상품을 구매할 때 비건 제품이 일반 제품보다 비싼 상황을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비건택스는 채식주의 입문을 방해하고 채식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비건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는 데에는 비건택스가 주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비건택스는 정말로 존재할까? 그렇다면 비건택스가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실존과 허구 사이의 비건택스

본지는 비건택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시중 상품의 가격을 조사했다. 먼저 햄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다. 기사 작성일 2025년 1월 9일 기준, 롯데리아는 대체육 버거로 ‘미라클버거(5,300원)’와 ‘더블미라클버거(5,800원)’를 판매하고 있다. 그중 미라클버거와 맛, 구성이 유사한 일반 버거 ‘리아 불고기’는 4,800원으로 500원 더 저렴하다. 더블미라클버거는 비교선에 놓을 제품이 모호해 비교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미라클버거에는 토마토가 사용되고 리아 불고기에는 양파가 사용되는 등 사용되는 재료가 달라 공정한 비교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브랜드버거’는 상대적으로 더욱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비건 메뉴 ‘베러 불고기’와 ‘베러 치즈 시그니처’를 각각 3,200원과 5,500원에, 비슷한 메뉴 ‘그릴드 불고기’와 ‘NBB 시그니처’를 각각 2,900원과 4,800원에 판매한다. 롯데리아와 달리 들어가는 재료가 거의 동일한데, 비건 메뉴가 300~700원 더 비싸다.

다음으로는 유통가 상품이다.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를 기준으로 조사했다. 최근 식물성 시장을 맹렬히 공략하는 풀무원은 식물성 상품 ‘지구식단 김치교자’를 7,980원, ‘얇은피꽉찬속 김치만두’를 9,980원에 판매하여 식물성 상품이 더 저렴했다. 심지어 용량은 지구식단 김치교자가 440g 두 봉지, 얇은피꽉찬속 김치만두가 400g 두 봉지로 식물성 상품이 더 많았다.

헬시플레저 열풍이 거세지자 유통업계는 더욱 다채로운 비건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 ‘동원’은 식물성 참치 ‘참치 마이플랜트’ 100g짜리를 4,180원, ‘동원 살코기참치’ 90g짜리는 2,380원에 판매 중이다. 10g당 각각 418원, 264원으로 식물성 참치가 약 1.5배 비싸다.

일찌감치 비건 시장에 담금질을 해온 음료 업계는 어떨까? 다수의 유제품 및 식물성 음료 제품을 유통하는 ‘매일유업’의 네이버 공식 스마트스토어 멸균 190~200ml 용량 24팩 제품 가격은 다음과 같다. 식물성 음료 제품군은 △‘매일두유 99.9’ 16,900원 △‘아몬드브리즈 오리지널’ 18,900원 △‘어메이징 오트 오리지널’ 17,600원, 일반 우유 제품군은 △‘매일우유 오리지널’ 18,900원 △‘소화가 잘되는 우유(락토프리)’ 19,900원 △‘상하목장 무항생제인증’ 20,900원으로 식물성 음료 제품이 저렴했다.

일부 상품에서 비건 제품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일반 제품이 더 비싼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내 비건 시장 태동기에 비해 업계가 안정되며 가격 하향 평준화가 일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자와 전문가 모두 '비건택스 체감한다'고 답해

상황에 따라 채식을 지향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라고 밝힌 한 소비자는 비건택스와 관련해 “모든 비건 제품이 비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비건을 프리미엄으로 포장해서 판매하는 일부 업체 때문에 비건택스가 문제시되는 것 같다. 비건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을 악용해 너무 비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라며 “특히 식당에서 비건택스를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비건 전문 식당은 평균 단가가 높다. 또 일반 식당에서 가격 대비 아쉬운 만듦새의 비건 메뉴를 판매하는 것도 체감 가격을 높게 인식하는 데 영향을 준다. 진정한 비건은 채식으로 포만감 있고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인데, 채소만 사용한 부실한 식사를 비건 메뉴로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 기운이 쭉 빠진다”라고 시장 환경을 증언했다. 소비자가 만족하기 어려운 비건 상품이 즐비한 시장 환경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전문가는 같은 사안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현경 비건 요리 연구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건택스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에서 비건 인구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건 제품 가격은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비건택스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일부 상품에서 비건택스가 책정되는 요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비건 시장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다. 대체 단백질, 식물성 음료, 비건 오일 등 주요 비건 원료나 제품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생산 시설 및 기반이 미흡해 제품의 생산 역시 해외에서 진행하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물류비용과 세금 같은 비용이 반영되어 최종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근본적으로는 비건 시장이 미성숙한 것이 문제다. 한국의 비건 시장 규모는 성장하고 있으나 전체 식품 시장에서 비건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따라서 기업들이 비건 시장에 투자하는 규모도 제한적이고, 그로 인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 비건 제품이 불리하다. 가치관을 지키고자 하는 비건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제한된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비건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원 상황은 어떠한가?

비건 제품에 대한 세금 감면이나 보조금 등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친환경 농업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비건 제품에 특화된 정책은 미비하다. 예를 들어, 환경부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친환경 농산물 생산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비건 식품을 위한 별도의 세금 감면이나 인센티브는 제공하지 않는다.

비건 시장 성장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비건 제품을 생산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책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비건 제품 및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감면이나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면, 소비자들이 더욱 합리적인 가격에 비건 제품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비건 시장 성장을 위한 해결 과제는 무엇일까?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앞선 답변으로 대신하고, 기업들은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인 비건 식품의 생산 및 원료 수급 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일부 기업들의 비건 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은 비건 전용 코너를 마련해 비건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히면서 생산 기업들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건 인증 제도를 강화하여 품질 높은 제품이 시장에 많이 출시되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건 시장은 기후위기, 환경문제 악화 등의 이유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요성이 대두되어 대중화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이 적극 협력하여 비건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쓴다면, 비건택스는 점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비건 소비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인 소비문화를 확산해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요컨대, 국내 비건 시장은 성장세에 있으나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다. 원료와 제품의 수급 및 생산 과정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투자가 절실한 까닭이다. 다만 정부와 기업 협력은 소비자의 관심을 기반으로 한다. 국내 비건 시장이 ‘비건택스’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매체와 소비자들의 역할 역시 중요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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