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의 가치, 10조 원
고물가 기조가 지속되고 친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며 못난이 농산물이 열풍을 끌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은 농산물 표준규격에서 벗어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농산물로, 맛과 영양은 그대로 간직하여 섭취하는 데는 무리가 없으나 정식 유통 창구를 통해 거래되지 않았던 등급 외 농산물을 말한다. 보통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작은 흠집이 난 농산물,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큰 농산물이 속한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산지농협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생산량 중 등급외 발생 비중은 채소류 14.6%, 과일류 22.2%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최소 2조 원에서 최대 5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업계는 못난이 농산물 규모를 정부 통계보다 최대 4배 많은 약 10조 원, 1만 t으로 추산한다. 못난이 농산물 폐기로 인한 손실은 단순히 판매하지 못하는 농산물의 규모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못난이 농산물을 폐기하는 데 추가로 연간 6,0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며, 못난이 농산물 매립 처리 과정에서 메탄가스, 이산화질소,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방출되어 지구비등화(沸騰化)*를 가속화하고 수질·토양 오염이 발생한다. 참고로 못난이 농산물 1g이 폐기되는 과정에서는 평균 1.65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알려진다. 매년 못난이 농산물 폐기로 1만 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이다.
* 일각에서는‘global boiling’을 번역한 ‘지구 열대화’가 온건한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열대 국가’, ‘열대 과일’과 같은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열대’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본지에서는 지구 열대화를 ‘지구 비등화(沸騰化)’로 대체하여 칭한다. (참고문헌: 『찬란한 멸종』, 이정모 지음, 다산북스 펴냄, 2024)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푸드리퍼브 사업
못난이 농산물과 같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에 새로 가치를 부여하는 사업을 ‘푸드 리퍼브(Food Refurb)’라고 한다. 일찍이 푸드 리퍼브 사업에 주목한 해외에선 크고 작은 성과를 내왔다. 미국의 대표 유통업체 ‘월마트(Wal Mart)’와 ‘크로거(Kroger’s)‘는 일반 농산물 대비 30~50% 저렴한 가격에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일본에선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과 환경성은 2015년 무렵부터 ‘아직 먹을 수 있음에도 버려지는 식품’을 뜻하는 ‘식품 손실’ 통계를 발표하며 국민적 경각심을 끌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할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13년부터 못난이 딸기를 통해 푸드 리퍼브 사업에 뛰어들었다. 산지 폐기되거나 국내 가공 업체에 헐값에 팔리는 딸기를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원료로 활용하도록 딸기 생산자 단체와 프랜차이즈 업체 간 업무 협약을 달성한 것이 골자다. 이에 농가는 kg당 700원에 판매하던 딸기를 1,300원에 거래하며 수입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못난이 농산물은 B2B 사업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이 보이는 분야는 뷰티 업계다. ‘이니스프리’, ‘스킨푸드’는 자사 일부 제품에 감자, 당근 등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했으며, ‘LG생활건강’은 2023년 11월 전 제품에 못난이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브랜드 ‘어글리 러블리’를 런칭하기도 했다. 어글리 러블리는 고흥 유자, 제주 당근, 함평 무화과, 청양 멜론 등 고품질의 원료를 활용하여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게 소구하고 있다. 한편 ‘이마트’는 올해 11월 감귤·사과·배 3종으로 못난이 농산물 기획전을 선보여 전월보다 157% 높은 매출을 기록했으며 ‘마켓컬리’, ‘농협’ 등 주요 온오프라인 유통사도 못난이 농산물 판매에 동참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의 사업성에 주목한 기업들이 늘어나며 B2B 판로 확대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못난이 농산물이 마주한 지속 가능성 과제
다만 못난이 농산물 산업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산물 생산자는 “못난이 농산물의 가치를 발굴하고 새로 활용하려는 접근방식은 좋다. 하지만 생산자 입장에서 오롯이 이로운 현상은 아니다. 못난이 농산물 판매가 브랜드 가치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력, 시간을 따져 보면 많은 수익이 남는 것도 아니다. 금전적인 기준만 놓고 보면 어떤 경우엔 단순히 폐기하는 게 낫기도 하다. 농가의 상황에 따라 못난이 농산물은 득이 아닌 실이 되기도 한다”라고 못난이 농산물 인기의 이면을 꼬집었다.
지속 가능성 가치는 환경적 가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 가능성은 공동체와 사회적 관행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 개념을 포함한다. 못난이 농산물의 상생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더욱 심층적인 접근 및 대응이 필요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은 13억 t이다. 우리나라는 푸드리퍼브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괄목할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일례로 못난이 농축산물 B2B 거래 플랫폼 ‘비굿(B.good)’을 운영하는 ‘에스앤이컴퍼니’는 농축수산물의 생육·작황·가격을 예측하는 AI(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여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비굿은 국내에서 다진 입지를 바탕으로 주요 농업 생산국 중 하나인 베트남에 진출하며 농업 스마트화를 위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설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움직임이 지구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사진 출처: Freepik.com, LG생활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