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품 포장지의 ‘비건 인증’을 한 번쯤 확인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비건 인증은 바쁜 현대 비건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지표다. 기업의 제품 생산 방식과 제품 성분표를 하나하나 살펴보지 않아도 ‘일단’ 믿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건 인증, 가만히 살펴보다 보면 찝찝한 기분이 든다. 기관의 종류가 여럿이거니와 정말 믿을 만한 절차를 통해 인증을 발급하는지 의구심도 든다. 비건 인증을 믿고 구매를 결정해도 좋을지 선택에 도움이 될 정보를 모았다.
■ 국내의 모든 비건 인증은 ‘민간 인증’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국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건 인증은 모두 민간기관이 발급한 인증이라는 점이다. 건강기능식품, HACCP(해썹) 등 식품 인증 제도를 주관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현재 비건 인증을 발급하고 있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역시 별도의 기준을 두지 않는다. 다만 식약처는 화장품을 대상으로 한 ‘화장품 표시·광고를 위한 인증·보증기관’으로 한국비건인증원을 지정하고 있으며, 올해 3월에는 ‘식품의 비건(vegan)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식품 대상 비건의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이에 따르면 비건은 ‘식품 등의 제조·가공 또는 조리 등 모든 단계에서 동물성 원재료를 첨가 또는 사용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식품’을 칭한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식품은 제품명 및 광고 등에 ‘비건’을 표시할 수 있다. 본 공표를 통해 비건을 이용한 광고 및 홍보에 대한 법적 실증 기준이 마련되었으나 이를 바탕으로 하는 실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준비된 것은 근래의 일이므로 기업에 대처 기간을 부여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해외의 상황은 어떨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비건 인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는 2011년 FSSAI(인도식품안전기준청)를 통해 국가가 공인하는 비건 인증 로고를 도입했다. 비건 인구의 수와 비건 문화의 성숙도에 따라 국가 공인 비건 제도 정착이 결정되는 것은 무릇 당연한 흐름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국내 비건 인구를 200~250만 명으로 추산한다. 전체 국민의 약 5%에 해당하는 수로 국가의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하기엔 다소 어려운 실태다.
■ 국내와 국제 모두 온전히 신뢰하긴 어려워….
비건 인증은 국내 인증과 국제 인증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국내 발급기관으로는 한국비건인증원과 ‘비건표준인증원’ 등이 있으며 국제 발급기관 중에선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Vegan Society, 영국비건협회)’, 프랑스의 ‘이브 비건(EVE VEGAN, 프랑스 비건 협회)’이 대표적이다. 시판 제품의 비건 인증 대부분은 상기 발급기관에서 발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건 인증은 어떠한 절차로 발급되는 걸까? 기관에 따라 상이하나, 일반적으로 비건 인증은 ‘접수 – 서류 검토 – 유전자 검사 – 판정 – 발급’의 단계를 거쳐 발급된다. 심사 기준은 ▲동물성 원료 미사용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제조시설/교차오염 방지책 수립 ▲동물 실험 미실시 등이다.
중요한 건 유전자 검사가 필수적으로 진행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비건인증원은 ‘비건 인증 신청 제품 특성에 따라 동물성DNA검사는 실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기재하고 있으며, 비건표준인증원 역시 ‘필요시, 동물성 유전자 분석 진행’이라고 고지하고 있다. 이 중 한 기관에 유전자 검사 품목에 대한 문의를 남긴 결과, 식품은 유전자 검사를 필수적으로 진행한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외의 품목은 특성에 따라 유전자 검사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 발급기관 역시 인증 발급 절차는 대동소이하며, 대체로 서류로만 인증 심사를 진행해 국내 인증 대비 신뢰도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 단, 이브 비건은 제조시설 심사를 진행하고 이 심사를 통과한 업체의 제품에만 인증을 발급하고 있어 공신력이 높은 편이다.
인증 유효기간은 발급기관별로 제각각이다. 한국비건인증원은 1년, 비건 소사이어티는 12개월/24개월(발급 시 택 1), 이브 비건은 제품 18개월 및 제조시설 36개월이다. 인증 기간 내에는 별도의 추가 검증이 이뤄지지 않으므로 발급 이후 엄격한 환경에서 제품이 생산되는지는 기업의 양심에 달린 셈이다.
한편 시중에는 비건 인증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식물성’, ‘채식’ 등을 기재해 비건 제품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제품이 더러 있다. 지난해 ‘GS25’에서 ‘베지가든’과 협업해 출시한 대체육 간편식 일부 제품엔 소고기, 우유, 새우가 사용되고 ‘롯데리아’가 식물성 패티를 강조해 출시한 ‘리아 미라클 버거’는 패티 외 재료에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어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외에도 지속 가능성과 식물성 재료를 강조한 제품들이 동물성 원료를 함유한 것으로 드러나 비판받은 사례는 수두룩하다. 국내 비건 시장의 성숙도가 얼마나 낮은지 증명하는 사례다.
현재로서는 시장의 절대적인 규모, 국민의 정책 공감도 등 여러 면을 고려할 때 비건 인증 법제화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기업과 인증 발급기관이 윤리 의식을 개선함으로써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제품 구매 환경이 구축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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