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요리에 담는 채소생활자 <채소의 계절> 저자 재인

<채소의 계절> 저자 재인 인터뷰

김은경기자 승인 2023.05.03 21:28 | 최종 수정 2023.05.03 21:36 의견 0

푸릇푸릇한 봄 새싹이 올라오는 3월에 시작해, 겨울을 마무리하고 다시 봄이 될 준비를 하는 2월까지. 계절을 요리에 담는 <채소의 계절> 저자 재인.

24가지의 제철 비건 레시피를 곁들인 열두 달의 채소와 함께 하는 에세이 <채소의 계절> 은, 온전한 채식주의자 또는 비건이 아닌 이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채소 요리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저자와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지난 4월 파인미디어는 작가 재인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가 소개

채소에게서 얻은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채소 요리를 해서 먹고 살아가는 채소생활자. 살아가는 에너지의 8할을 채소에서 얻고 있다. 제철 채소로 밥상을 차리며, 밭에서 온 뜻하지 않은 재료를 만날 때 주방에서 오롯한 기쁨을 느낀다.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거나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소소하게 발견하고,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습관으로 만들어가며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비건 레시피와 에세이가 담긴 <채소의 계절>을 썼다.

Q. 채식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계절을 담은 요리를 알리고 계신데요. 채식은 언제부터 시작했으며, 채식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취미가 있다 보니 육식을 건강 문제와 결합시켜 다룬 다큐멘터리라든지,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되고 막연하게 채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요리를 직접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했어요.

5년 전쯤이었는데, 당시에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거든요.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때였는데, 1년 동안 간병 생활을 하게 되었죠. 병원 생활과 집안 살림을 하면서 요리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뇌졸중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니까 질병을 유발시키는 60%의 요인이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더라고요. 할아버지도 심혈관질환으로 중풍을 앓으셨기 때문에 가족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는 나와 자매들도 이렇게 아빠처럼 쓰러질 수 있겠구나 싶어서 밑져야 본전이니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면 조금이나마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채소 요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고기 요리도 했는데, 어차피 내가 요리하는 거니까 내 맘대로 해볼까? 하고 식단을 전부 채식으로 바꿨어요. 그렇게 시작한 채소 요리가 되게 재미있었어요. 색감이 다채로워서 예쁘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굉장히 다양하고요.

Q. 채식을 하고 나서 달라진 일상 또는 감정이 있을까요?

채식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 것 같아요. 그만큼 채식이 삶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겠지요? 어떤 사람은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성격이 온순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감기가 안 걸린다는 사람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저도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겠지만 그걸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변화라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중에 있는 것이니 ‘채식을 통해서 이런 것이 변했다’라고 한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채식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채식이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부분은 삶을 대하는 태도, 나를 대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채식을 하면 일상적으로 채소를 접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제 삶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저 무라고 부르고 그걸 일 년 내내 먹지만, 봄에 나는 무와 가을에 나는 무, 그리고 겨울을 지나고 난 무는 다르거든요. 그리고 같은 무라고 해도 어느 지역에서 자란 것인지, 농부가 어떻게 키웠는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심지어 한 밭에 있는 무라고 해도 다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하더라도 무의 특성에 따라서 매번 맛이 달라져요. 매일 같은 뭇국을 먹어도 매일 다른 뭇국인 거죠. 이게 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채소가 다 그래요. 그러다 보면 채소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죠.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구나’,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구나’, ‘우리는 모두 유일한 존재구나.’라고 말이에요.

그리고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해야 하는 것도 없고,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배우게 돼요. 길을 걷다가 땅을 보면 항상 무언가 자라고 있거든요. 잡초라고 불리는 존재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계절마다 피고 지고, 때로는 우리 밥상에 향기를 불어넣는 채소를 만나게 돼요.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다 필요한 것들이거든요. 그런 존재들을 보면 부단히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마음속 깊숙하게 느끼게 돼요. 가끔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다 갈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잘 보낸 하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자책’하게 돼요.

그런데 채소가 주는 시간에 따라 살아가게 되면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괜찮다.’ 그게 가장 ‘삶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다들 종종거리면서 살잖아요. 물론 그런 시간도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요해요. 그 시간은 사회적 자아로 살아가는 시간인데요, 사회적 자아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어요. 그러면 공허해지죠.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한데, 채소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나로 살아가게 해주는 것 같아요. 계절마다 바뀌는 채소와 시간을 보내면서 계절의 흐름을 눈으로 보고, 먹고, 내 몸에도 계절의 흐름을 흘려 넣으면서 살아 나가는 거죠. 자연스럽게요.

Q. 채소의 계절이라는 책을 출간하셨어요. 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채소의 계절>은 채소와 함께 살아낸 열두 달의 기록이에요. 1년 동안 제가 살아온 시간 중에서 글이 된 시간을 담았고, 각 계절에 맞는 제철 채소를 사용한 레시피도 곁들여져 있어요.

저는 식단의 80% 정도 채식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제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8할을 채소에서 얻고 있는 거죠. 제 삶은 물론이고, 제가 하는 생각, 제가 느끼는 감정, 제가 하는 일들 모두 채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Q. 글은 마음의 노폐물을 내보내는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인지, 작가님의 글은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궁금해요.

저는 감정도, 생각도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딘가에 고이지 않고 흘러갈 때 가장 편안한 것 같아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무수한 감정과 생각이 나라는 사람에게 담기게 되는데,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지요. 그러다 보면 감정도 생각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게 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내 마음속 어딘가에 미처 흘러가지 못한 생각과 감정이 고이게 되다 보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이 썩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속이 계속 망가지게 되는 거죠. 돈이라든지, 타인의 시선이라든지, 보이는 가치에 연연하게 되다 보니 생각이나 감정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기 쉬운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음이나 생각이 어딘가에 고이지 않도록 저를 살피는 게 글쓰기인 것 같아요. 알아차림의 기록이기도 하죠.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고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제가 저를 잘 보고 있는 거죠. 스스로를 잘 보고 있을 때, 타인도 잘 살필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모든 게 다 영감이 돼요. 제 자신을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글이 되는 거지요. 오늘 내가 먹은 채소, 만난 사람, 나눈 대화, 걸은 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길가에 핀 꽃 등이 영감을 주는 요소예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고요. 제가 살아가는 일상이, 제 삶이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쿠데타나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와 가뭄, 화재와도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Q. 요리가 작가님께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삶과 사랑인 것 같아요. 요리는 누구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내가 요리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만 하죠.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만 하니까요. 요리는 그런 의미에서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행위예요. 우리는 누구나 내가 직접 만들었건, 누가 만들어주었건 요리를 먹으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그것은 사랑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니 요리는 그 자체로 삶인 동시에 사랑이지요.

주방에 서서 요리를 하면서, 누군가 내게 내어줬던 사랑을 떠올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요. 그리고 나의 요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주면서 제가 받았던 사랑을 세상으로 다시 내어놓는 것 같아요.


Q. 가장 좋아하고 즐겨 쓰는 식재료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맛있고 다양하게 채소 요리를 하는 법도 공유해 주세요.

가장 좋아하고 즐겨 쓰는 식재료는 당근이에요. 당근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요.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익혀 먹어도 맛있고, 어떻게 먹어도 맛있어서 좋아해요. 어렸을 때 엄마가 도시락으로 주먹밥을 자주 싸주셨는데, 그 안에 든 다양한 주먹밥 중에서 유일하게 남기지 않았던 주먹밥이 당근 주먹밥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당근이 맛있어서 좋아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더 좋아졌어요.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거든요. 보통은 마트에서 뿌리 부분만 판매하지만, 잎도 먹을 수가 있어요. 잎이 얼마나 예쁘고 향긋한 지 몰라요. 당근 잎은 보관이 오래 가능해서 뿌리와 분리해서 비닐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면 한 달이 지나도 무르지 않아요. 요리하고 마지막에 가니쉬(장식)으로 사용하기에도 좋지만, 페스토로 만들어도 좋고, 전을 부쳐먹어도 좋고요.

맛있고 다양하게 채소 요리를 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법은 기본 조미료를 바꾸는 것이에요. 조미료라 함은 된장, 간장, 고추장, 소금을 말하는데요.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조미료는 화학적인 첨가물이 들어간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마트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조미료가 제대로 발효를 거친 것이 아니라 첨가물을 넣어 만든 것들이거든요. 이런 조미료를 전통방식으로 발효해서 만든 조미료로 바꾸면 뭘 계속해서 더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어요.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면 조미료를 바꾸는 걸 추천드려요. 생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요. 식품성분표를 살펴보시면 콩, 소금, 물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걸 구매하시면 돼요.

24가지의 채소 요리와 함께 그의 솔직하고 온기가 넘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채소의 계절>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앞으로의 열두 달이 더 궁금해지는 작가 재인, 그만의 색이 묻어나는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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