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은 벌레가 먹었는지 반 토막이 났고, 어떤 것은 노랗고, 어떤 것은 또 퍼렇고, 어떤 것은 거뭇거뭇, 어떤 알은 크고, 어떤 알은 작고 크기도 제각각. ‘아니, 이래도 되는 거야?’하는 생각과 함께 망설임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주의 토종콩인 독새기콩을 처음 배송받았을 때, 든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콩을 사면 알의 크기가 비슷하고, 색도 균일했기에 이렇게 못생긴 콩은 생전 처음이었다. 이미 콩은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우리 집까지 왔고, 내 손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콩을 씻어서 불려두었다. ‘다음에는 여기서 사지 말아야지’하는 다짐과 함께. 그런데 다음날 불린 콩으로 콩탕을 끓여 먹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웬걸? 고소하고, 단맛이 풍부한 게 맛이 좋구나!’ 겉모습만 보고 품질이 불량하다고 괘씸해하던 양심에 털이 보송보송하게 났다.
겉보기에 균일한 품질은 아니지만 맛은 좋은 이 콩은, 품질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pexels
텃밭 생활을 해보면 이제까지 내가 알던 채소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자로 매끈한 애호박, 가지와 오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여리여리한 깻잎과 상추는 텃밭에서 나는 채소 중 아주 적은 양을 차지했다. 이렇게 꼬부라질 수 있나 싶게 꼬부라진 오이와 통통해져서 터질 것만 같은 애호박, 도대체 뭘 먹고 이렇게 큰 건지 팔 길이만큼이나 길쭉한 가지가 널려있다. 마트에서 본 매끈하고 균일한 크기의 채소는 이런 ‘이상한’ 채소들 사이에 아주 간간이 섞여 있었다.
처음에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채소들을 만났을 때는 당황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나?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하는 의심이 들면서, 전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맛을 보고 나서 나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노지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고 자란 채소들은 이제까지 내가 늘 먹어왔던 채소와 맛이 달랐다. 향과 맛이 진하고, 개성이 강했다. 엄마가 매번 식탁에서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야.”라고 하던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채소가 자라는 환경이 달라졌으니, 맛이 다를 수밖에 없는 법.
우리가 먹고 있는 채소는 비닐하우스에서 물과 비료를 아낌없이 줘가며 기른 것으로, 상품성이 있는 크기의 것들만 선별돼서 우리에게로 온다. 비닐하우스에서 물과 비료를 잔뜩 먹고 자란 채소들은 노지에 나는 것보다 부드럽고, 수분이 풍부하다. 대신 맛도 그만큼 연하고, 금방 물러지는 특성이 있다. 그렇다고 비닐하우스에서 나는 모든 채소를 다 먹는 것도 아니다. 상품성이 없다(크기가 너무 작거나 큰 것,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것들)고 생각되는 채소들은 농부의 식탁에 오르거나 하품으로 취급되어 헐값에 넘겨지거나, 가공식품을 만들 때 사용되거나, 버려진다. 겉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의 채소만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길러지는 환경이나 땅에 미치는 영향, 채소가 가지고 있는 맛은 뒷전이 된다.
우리가 채소를 대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 경쟁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트의 매대를 차지한 채소들을 보면 갓 대학교를 졸업하고 면접을 앞둔 친구들이 떠오른다. 정해진 룰은 없지만 공공연히 회자되어 내려오는 족보에 따라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포마드를 발라 한 가닥 튀어나온 머리카락도 없이 매만진 머리에, 자신의 역사는 지워진 채로, 면접관이 좋아하는(좋아한다고 여겨지는 정해져 있는) 멘트를 날리는 사회 초년생들. 이들은 공장에서 생산되지는 않았지만, 개성은 지워진 채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하늘 아래 단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꼭 같지는 않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라난 환경에 따라 맛도 향도 다 다르다. 자연스럽게 자라난 채소들을 ‘이상하다’라고 평가하며 똑같은 모습이 되기를 강요할 때,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우리가 이상하다고 외면해온 채소의 모습이 ‘진짜’ 채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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