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와 이사하기, 집사를 울고 웃게 만드는 그 이름 고양이

반려묘와 이사할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

김은경기자 승인 2023.05.31 23:41 의견 0

아직은 찬바람이 불던 4월의 어느 날. 기존에 살고 있던 오피스텔의 계약기간이 끝나며 다시 이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혼자 사는 1인 가정의 이사는 별거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 또 일일이 발품을 팔고, 집안 구석구석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뿐이랴, 오랜 자취생활로 인해 늘어난 수많은 살림살이들은 어쩔 것인가. 미루고 미뤄왔던 짐 정리를 오늘은 반드시 하겠노라 허리춤에 손을 얹고 굳건히 다짐을 해보지만, 세도 세도 끝이 없는 짐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다시 절로 한숨이 푹푹 나온다.

하지만 이사를 하는 모든 과정에 걸쳐 사실 내가 제일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의 반려묘들이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환경이 바뀌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적응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집이 떠나가라 울고 식음을 전폐할 모습이 눈에 훤했다. 허나 그전에 이 아이들을 새 집으로 옮기는 것이 더 큰 장벽이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이동장에 넣는 것부터도 일이었기에 간식으로 유인을 해볼까, 그냥 부여잡고 집어넣어 볼까 별별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걸.


기존 집을 빼기 열흘 전쯤 미리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열흘의 기간 동안 아이들이 놀라거나 힘들지 않게 천천히 옮길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불필요한 짐들은 폐기 처분하고 간단한 짐만 먼저 옮겼다. 짐이 모두 빠진 고요한 집 안에는 나와 네 마리의 반려묘들만 남게 되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한두 마리씩 옮기자 생각하며 가장 순한 아이를 먼저 이동장에 넣었다. 몇 초간 상황을 파악한 아이는 역시나 울고불고 이동장을 긁으며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망설여졌지만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은 그렇게 차례로 이동장에 들어갔고 펫 택시를 불러 새집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한 마리만 빼고.

유일하게 여아인 나머지 아이는 순화가 되지 않아 10년을 함께한 집사인 나도 쉽게 만질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예민하고 겁이 많은 고양이였다. 눈만 마주쳐도 후다닥 도망을 가버리는 탓에 첫날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버리고 내일은 반드시 성공하자 스스로 다짐하며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았는데.. 이것이 무려 9일이나 갈 줄이야.

복층의 창고 합판 아래 단단히 자리를 잡은 아이는 아무리 불러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간식으로도 유인을 해보고 장난감도 흔들어 보고, 1층에서 없는 척을 하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숨죽이고 몇 시간을 기다려 보기도 했다. 허나 쓸데없이 눈치만 빠른 아이는 불편하지도 않은 지 그 창고 합판 아래에서 거의 반나절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밥과 물을 챙겨주고 잠시 나갔다 오면 그새 먹고 다시 들어가길 반복했다. 이제 집을 빼줘야 하는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아이는 그 집 귀신이라도 될 기세로 망부석처럼 버티고 앉아 내 속을 그렇게도 애태웠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싶어 온갖 동물 관련 업체란 곳은 다 전화해 보았고, 심지어 119구조대원분들까지 오셔서 아이를 함께 빼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양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고양이 탐정 세 분께도 의뢰를 했으나 강제로 아이를 빼내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을 고안해 보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절망감에 온 힘이 빠져 허탈해하던 중, 탐정 중 한 분이 다시 연락을 주셔서 방법을 제안해 주셨다. 바로 통덫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통덫


길고양이들을 구조하거나 할 때 사용하는 통덫. 고양이가 안으로 들어가면 자동으로 문이 닫혀 도로 나오지 못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인데, 문제는 이 통덫을 당장 구매한다고 해도 배송까지 시간이 걸릴 테고 내가 과연 사용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 오히려 더 막막해지기만 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로 유명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일명 고다)에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려보았다. 수많은 응원의 댓글들이 달렸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감사하게도 그중 한 분이 흔쾌히 통덫을 빌려주시겠다고 하여 한달음에 달려가기로 했다.

다행히 집과 멀지 않은 곳에 계신 고다 회원분께서는 튼튼하고 깨끗한 통덫을 바로 빌려주셨고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곧장 집으로 돌아와 통덫 안에 아이를 위한 간식과 밥, 물을 준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설치 후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제발 통덫에 잡혀 있기를, 너와 새 집에서 웃으며 다시 인사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말이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간 집에는 역시나 정적만 흘렀다. 발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2층으로 올라갔다. 아이가 있는 곳과 가까운 자리에 설치한 통덫. 슬그머니 안을 바라보자 아니 웬걸. 정말 귀신처럼 숨기 바쁘던 아이가 통덫에 얌전히 들어가 앉아있었다. 나가려고 애쓰고 난리를 친 모양인지 온몸엔 간식이 묻어 있고 밥통은 다 뒤집어 엎어져 있었지만,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바들바들 떠는 아이의 모습을 보다 통덫을 끌어안고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다. 9일간의 길고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난 순간이었다.

약 두 달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막막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름 반려묘를 10년 넘게 키운 프로 집사라고 생각했지만 고양이는 늘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내어준다. 잠시도 방심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도움을 주셨던 탐정님께서는 긴 장문의 메시지로 고양이를 데리고 이사를 하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할 상황이 필요할 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첫째, 이동 시 필요한 이동장은 3중 잠금장치로 탈출을 봉쇄하는 켄넬을 사용할 것. 지퍼식 케이지는 아이들이 뚫고 나올 수 있기에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둘째, 창문이 있는 집은 반드시 방묘창을 설치할 것.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네트망과 케이블 타이를 구매할 수 있다. 창문에 아무리 방충망이 있다 하더라도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은 방충망을 쉽게 뚫을 수 있으며, 심지어 문을 열 수 있는 아이들도 있다. 네트망을 설치해 아이들의 탈출을 쉽게 막을 수 있다.

셋째, 현관에 방묘문을 설치하는 것이다. 보통 고양이들이 탈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택배나 배달이 왔을 때, 환기를 시킬 때 등 현관문을 잠깐 열어놓았을 때이다. 온라인으로도 방묘문은 쉽게 구매하고 또 쉽게 설치할 수 있으니 반드시 방묘문을 설치하라고 당부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반려묘와 이사를 하기 전 반드시 아이가 켄넬과 친해질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하며, 아이가 숨을 만한 곳들은 최대한 막아놓고 이삿짐센터가 오기 전 아이가 놀라 도망가지 않게 미리 켄넬에 넣어놓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오랜만의 이사로 우왕좌왕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눈물 콧물 쏙 빼고 나니 그제야 내가 좀 더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었구나 후회가 막심했다.

이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새 집에 적응해야 할 아이에게 나는 얼마나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얼마나 끊임없이 인내해야 할지를 또 시험받게 될 것이다.

집사를 울고 웃게 하는 그 이름, 고양이.

글 · 사진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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