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재인 (채소의 계절 저자)
귀한 것을 귀하게
대변을 본다.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린다.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대변뿐만이 아니다. 소변, 음식물 쓰레기도 아깝다. 냄새나고 더러워서 멀리하고 싶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의 대표주자들이다. 나는 어쩌다 이것들을 이렇게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이때까지 벼르고만 있던 농사를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나는 그때까지 내 손으로 식물 하나도 제대로 건사해 본 적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농사를 짓고 싶다’라는 막연한 꿈을 꾸며 살아왔다. 그러다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 그해 3월, 감자 농사를 시작으로 도시 농부가 되었다. 30년을 살아왔건만, 이때까지 배운 건 하나도 쓸모가 없을 정도로 텃밭 생활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감자를 심기 위해 밭을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감자를 심고, 잡초를 뽑고, 필요한 때에 비료를 주는 것처럼 직접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이 다 뽑아 없애야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각각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뜯어서 먹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잘라서 흙에 덮어두면 *멀칭 효과가 있어서 수분을 보호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흙 속에 살아가고 있는 미생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해 흙의 영양분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 또한, 내 몸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냄새나고 더럽게 여겨져서 멀리해야만 하는 줄 알았던 소변이 실은 아주 귀한 비료가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농부님께서 처음 소변을 모아오라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나는 뜨악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은근한 깔깔거림이 피어올랐다. 마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대놓고 허락받은 것 같은 이상하고 간지러운 설렘과 이제까지 내가 더럽다고만 생각하던 것이 실은 아주 유용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붕괴에서 오는 신비로움이었다. 소변은 혐기성 물질이라 밀폐를 해두면 냄새가 나지 않고 발효가 시작되는데, 소변을 본 후 뚜껑을 닫아 일주일 동안 보관해 놓으면 아주 좋은 질소 비료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소변을 아주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매일 소변을 볼 때마다 받아 모으기 시작하니 하루에 1~2리터쯤은 거뜬하게 모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너무 많아서 변기에 흘려보내야만 했다. 소변이 거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소변을 다량의 깨끗한 물과 함께 흘려보낼 때마다 물도, 소변도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양질의 비료가 되는 것은 소변뿐만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대변도, 음식물 쓰레기도, 달걀 껍데기와 쌀뜨물도 텃밭에서는 다 귀한 것들이었다. 속은 아주 달콤하고 맛있지만, 음식물 쓰레기가 왕창 나오는 수박껍질도 텃밭에서는 골칫덩어리가 아니다. 닭에게 주면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닭들에게는 아주 맛있는 간식이었으며, 밭 한구석을 파서 묻어두면 1년 후에 보슬보슬하고 짙은 고동빛이 나는 양질의 흙을 만날 수 있었다. 농장 한구석에는 생태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대변을 보고 *왕겨로 덮어두면 신기하게도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대변은 어느 정도 양이 되면 농장 한구석에 모아 비닐로 덮어둔 뒤 나중에 밭에 뿌려주었다.
이후로 밭에 가는 날이 되면 대변은 참았다가 농장에 있는 생태 화장실을 이용하였고, 음식물 쓰레기는 밭의 한쪽 구석에 묻어주었고, 쌀뜨물을 열심히 모아다 날라 물 대신 뿌려주었다. 화학 비료도, 제초제도 쓰지 않았지만 내 밭의 채소들은 쑥쑥 잘 자라기만 했다. 작물이 자라는 데에는 땡전 한 푼 들지 않았다. (물론 텃밭을 빌리는 비용이나 텃밭에서 사용하는 도구 등 부대비용이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로 작물이 자라는 데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텃밭에서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개념이 붕괴되었다. 내가 쓰레기, 즉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귀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자, 나는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당연한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매일 하루 세 번 양치하고 뱉은 치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그것들은 다 어디로 흘러갈까?’, ‘내가 버린 쓰레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매일 먹는 이 채소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적에는 지금만큼 비닐이 흔하지 않았고, 엄마는 비닐을 몇 번이나 사용해서 너덜너덜해진 후에야 버리고는 했다. 일회용기도 흔하지 않아 짜장면을 먹는 날이면 용기를 들고 집 근처 중국집에 가서 포장해왔던 기억이 난다. 물건을 버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한 번 사면 언니가 쓰고, 물려받아 내가 쓰고, 동생이 쓰고, 쓸모가 없어지면 우리 집에서 이 집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갔다가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흔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지지리 궁상인 줄 알았는데,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며 아낄 줄 아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무엇이든 흔해도 너무 흔해서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흔해진 만큼 그렇게 한 번 쓰고 버리는 것들은 가격도 얼마 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이고, 이것이 내게 오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시간이 걸렸을 텐데, 쓰고 버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만들어지고, 내게 오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짧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버린 것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는 데에는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귀한 것을 귀한 줄 아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귀함의 가치를 금전적 교환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작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리고 나를 가장 기쁘고 나답게 만드는 것은 모두 그 곳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멀칭: 농작물을 재배할 때 경작지 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
*왕겨: 쌀 껍질로 벼를 도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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