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으로

채소의 계절 저자, 재인

김은경기자 승인 2023.07.19 15:53 의견 0

“엄마!!!!!!”

엄마도 없는데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애타게 엄마를 찾는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거미 한 마리가 소리도 없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최대한 저 친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걷는다. 행여 조금이라도 움직일까 봐 가슴 졸이며, 살금살금 조심조심 후다닥 잽싸게 소파나 의자 위로 피신한다. “엄마!” 하는 비명과 함께. 누군가 잡아줄 사람이 있으면 천만다행이지만, 나 말고 아무도 없으면 하루 종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 곤두선다. 그나마 요즘은 밭일을 하지 않으니, 집에서 날아다니는 노린재를 보거나 꿈틀거리며 털이 잔뜩 나 있는 통통한 무당벌레 유충을 보는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한창 텃밭 생활을 하던 때는 밭에 다녀온 날이면 어김없이 밭 친구들(곤충)을 집에서도 마주하고는 했다. 분명 낮에 밭에서 본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밭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그 모습이 낯설었다. 어딘지 모르게 무섭고 기괴한 느낌에 소름이 와다다 돋고,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는 했다.

벌레라고 불리고 곤충으로 분류되는 친구들과 몇 년이 지나도 좀처럼 친해지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름 적응된 건 지,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무서워서 도망갈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손으로 만질 수는 없었지만, ‘못 본 척’하고 내 할 일을 할 수는 있었기에 텃밭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은 나로서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는데, 나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아주 작은 날벌레 한 마리가 손에 닿는 것도 기겁하는 종자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나를 아주 잘 아는 엄마는 내가 “나는 농사짓고 살 거야.”라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대체 어떻게 농사를 지어? 네가 퍽이나 농사짓겠다.”라며 콧방귀를 뀌고는 했다. 나도 내가 농사를 정말 지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실제로 텃밭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신기한 건, 여전히 곤충이 무섭기는 해도 밭에서 볼 때는 집에서 보는 것만큼 무섭진 않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보고 산 것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기도, 종류도, 색깔도 다양해서 아주 다채롭게 징그러운 벌레 녀석들이 온 천지에 깔려있는데도 말이다. 집에서는 바퀴벌레 한 마리만 봐도 난리법석이 나는데, 밭에서 보는 바퀴벌레는 아주 반갑고 귀엽기까지 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밭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간의 속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늘로도, 양옆으로도 열려있는 공간인 밭에서는 너도나도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누구든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은 사방으로 막혀있어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다. 지붕과 벽은 비바람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한정되어 있다. 경계 지어진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 집은 나의 집, 내가 허락한 존재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요즘은 자려고 누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기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그냥 자려다 말고 불을 켜고 손에 전기 파리채를 든다. 눈에 불을 켜고 모기를 찾는다. 기어코 잡고야 만다. 내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곤충 중의 하나가 모기였다. 모기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질병을 옮기기만 하지 ‘대체 얘가 지구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바퀴벌레도 마찬가지였다. 모기나 바퀴벌레처럼 필요 없는 것들은 이 지구상에서 멸종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외국의 한 호숫가에 모기가 기승을 부리자, 모기의 씨를 모두 말려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모기가 사라져서 한동안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었고, 머지않아 호수가 사라지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숲마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비록 한낱 인간인 내가 보기에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존재도, 이 지구에 존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처 내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뿐. 인간의 영리함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의 입장에서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협소한 시선일 뿐일 것이다.

여름은 곤충의 계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곤충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절이다. 요즘 곳곳에서는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곤충들을 없애는 작업이 한창이다. 하얀 기체를 뿜어내는 방역 차를 보면서, 저 소독약이 곤충만 죽이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라는 단어가 그 누구에게도 칼이 되지 않기를.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너와 나를 옭아매는 단어가 되지 않기를. 우리라는 단어 안에서 너는 온전한 너로, 나는 오롯한 나로 존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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